블랙록 토큰화, 전통 금융을 다시 설계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이 ‘토큰화(Tokenization)’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전통 금융시장에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블랙록 토큰화는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실물자산을 디지털화해 더 효율적이고 투명한 금융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전략적 방향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더리움 기반으로 설계된 BUIDL 펀드입니다. 이 펀드는 미국 국채 등 단기 금융자산에 투자하면서도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하는 구조로, 매일 발생하는 이자 수익을 자동으로 지급하고, 실시간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투명성을 제공합니다. 이 같은 토큰화된 자산은 머니마켓 펀드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으며, 암호화폐 거래소나 파생상품 플랫폼에서 담보 자산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제도권 금융 진입을 위한 현실적 조율
블랙록 토큰화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규제 대응’입니다. 디지털 자산은 종종 암호화폐로 오해되기 때문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승인을 받아야만 제도권 금융상품으로 운용될 수 있습니다. 블랙록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이트리스트 기반의 KYC 절차와 중앙집중형 통제 체계를 도입했습니다. 이 방식은 탈중앙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투자자 보호와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율입니다.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모든 자산은 결국 토큰화될 것”이라며, 이 흐름이 디지털 신원 인증 시스템과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인도 Aadhaar와 같은 디지털 신원 체계를 모델로 제안하며, 글로벌 금융기관 간의 규제 협력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금융 탈중앙화인가, 통제된 진화인가
일부 전문가들은 블랙록 토큰화가 진정한 탈중앙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블랙록이 자산 생태계를 ‘허문(walled garden)’처럼 설계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실제 투자 환경에서는 보안, 규제 대응, 투자자 보호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통제된 구조는 과도기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시큐리타이즈(Securitize)와의 협업은 토큰 발행, 거래소 연동, 투자자 인증 등 블록체인 기반 금융 인프라를 전방위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파트너십은 블랙록의 토큰화 전략이 단순한 기술 접목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글로벌 금융사도 토큰화 전쟁 중
블랙록의 움직임은 다른 글로벌 금융기관에도 큰 자극을 주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 BNY 멜론, JP모건, 페델리티, 프랭클린 템플턴 등도 자산 토큰화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머니마켓 펀드의 디지털화를 실험 중입니다. JP모건의 Kinexys 네트워크는 기업 간 자산 이전을 실시간으로 처리하며, 전통 금융과 디파이(DeFi) 간 연결 고리를 넓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월가의 주요 기관들이 블록체인 기반 자산 운용에 동참하면서, 블랙록 토큰화는 그 자체로 ‘표준 모델’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실물자산 토큰화 시장의 확산과 과제
2025년 기준, 실물자산 토큰화(RWA) 시장 규모는 약 240억 달러로 추산되며, 이 중 미국 국채 토큰화 시장은 6억 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 블랙록의 BUIDL 펀드는 약 30~4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이 시장이 2030년까지 최대 4조 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하지만 과제도 분명합니다. 온체인-오프체인 간 연계 불안정, 스마트 컨트랙트 보안 취약점, 네트워크 수수료 문제 등 기술적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게다가 국가별로 디지털 자산에 대한 법적 해석이 상이해, 글로벌 유통에는 제약이 따릅니다. 유럽연합이 MiCA 규제를 통해 법적 정의를 마련한 것과 달리, 미국은 여전히 SEC와 CFTC 간의 관할 갈등이 남아 있습니다.
블랙록 토큰화의 다음 단계는?
블랙록의 다음 목표는 머니마켓을 넘어 부동산, 인프라, 사모펀드, 사모대출 등 다양한 실물자산의 디지털화입니다. 특히 조건부 자동 거래가 가능한 스마트 자산, AI 기반 전략과 연결된 지능형 토큰, 온체인 신원 인증 기반의 금융 네트워크가 결합된다면, 지금의 금융 시스템은 전면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더 투명하고 실시간 정산이 가능한 구조로의 변화이며,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과 리스크 분산, 그리고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입니다. 블랙록 토큰화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금융 산업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움직임이 되고 있습니다.